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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전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인재를 뽑는 기준

【사람중심】최근 한 IT 업계 인사가 국내 대기업의 고위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간다는 소식이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종종 거론되곤 합니다.

이 인사는 이른 바 최고 명문대 출신에, 유명 IT 기업에서도 일했고,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에서도 요직을 맡은 바 있습니다. 그는 IT 기업의 한국지사 대표로 영입되면서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이른 바 스펙(spec)도 화려하고, 언변도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컨설팅 업체 출신만 중용한다거나, 말만 앞세운다거나, 기존의 사업 방식을 무시한다는 등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었습니다.

특히 대표로 취임한 회사의 기존 사업 방식을 무시하고, 컨설팅 업체 출신들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낸 것은 조직의 융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기존 인력들과 새로 영입된 인력들 사이에 반목이 생긴 것이겠죠.

회사의 여러 팀에 컨설팅 기능을 심어놓은 탓에 조직 전반에서 영업의 결단력이 부족해졌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컨설팅 기능을 가지고 있는 여러 팀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반면, 의논을 조율하다가도 일정 시기가 오면 결정을 해야 되는데 그런 점에서 타이밍을 놓치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그는 자리를 떠났지만, 무소불위의 지위를 휘두르던 대표였던 만큼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후유증이 있을지언정 더 늦기 전에 조직을 떠나주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직이 더 화제가 된 것은 이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그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아주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는 이 대기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어떤 팀으로 가게 됐는데, IT 업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대체 어떤 점을 보고 그를 고위 임원으로 영입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 대기업이 어떤 근거로 판단을 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스펙만 보고 뽑았겠지 뭐”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학벌에, 좋은 경력을 가진 사람을 뽑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IT 업계에서 ‘사장이 직업’인 사람을 적잖이 보아 왔습니다. 직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실적도 좋지 않지만, 한번 외국기업의 한국지사장을 맡고 나면 그의 다음 자리도, 그 다음 자리도 계속해서 지사장이 됩니다. ‘무슨 무슨 전문가’가 아니라, ‘사장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주례를 전문으로 보는 사람처럼 말이죠.

앞서 말한 대기업이 그를 영입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입할 사람이 속했던 조직이나 일했던 분야에서의 평가 보다는, 자신들이 눈으로 확인한 스펙을 더 확신하는 거겠죠.

그러고 보니, 우석훈 교수가 ‘조직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몇몇 대기업과 관련해 언급했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위기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습니다. 갑자기 책을 찾지 못해 정확하게 옮기지는 못하지만, 대략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채용하는 신입사원들의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해외 연수를 다니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원가 최고의 강사들에게 과외를 받고, 특정 명문대학에 입학해, 대학생활 중에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들이다. 이렇게 천편일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서 성장한(이른바 최고 스펙의) 사람들만 뽑는다면,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디어라는 것에서 큰 차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습니다.

한마디로, 여러 분야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발굴해 다양성이 꽃피울 토양을 만들지 않는 조직에서는 예측가능한 아이디어만 만들어질 뿐, 기발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벌이나 고등교육과 상관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거나,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 대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현대그룹을 만든 고 정주영 회장은 소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학력이지만, 폐유조선을 이용한 ‘배 물막이 공사’로 여의도의 48배에 해당하는 서해안을 간척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방식을 전세계적으로 ‘정주영 공법’이라고 부릅니다.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는 회계학 전공자이고, 록그룹 퀸(Qween)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현재 영국 존무어스 대학의 총장으로 재직중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자에게 대규모 간척사업을 맡기고, 그룹사운드 연주자 출신에게 대학 총장을 맡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공할 확률은 더 낮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대기업들이 외국 기업들과 비교를 당하며, ‘혁신’의 토양이 크게 못 미치는 점을 지적받고 있는 상황에서 ‘인재를 뽑는 방식에 너무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닌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식장에 소속된 주례 전문가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신혼부부는 그에게 무언가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고언이나, 기존에 들어 볼 수 없었던 감동적인 주례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 형식이나 갖추자고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사장이나, 임원을 뽑는 기업들의 입장도 이와 같을까요?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