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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가 없었던 스티브 잡스의 복귀

【사람중심】 애플이 드디어 아이패드2를 출시했습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3월 2일에 진행된 이 행사는 아이패드 첫 출시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올해 초 CES와 MWC에서 아이패드를 위협할 만큼 강력한 사양을 지닌 태블릿이 대거 출시된 상황에서, 전세계 태블릿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는 애플이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미리부터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이날 행사가 더욱 눈길을 끈 것은 그동안 건강 이상설에 시달리던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2와 함께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 언론들은 잡스의 암 투병과 관련해 ‘6주 시한부’ 등의 추측을 해왔습니다.

잡스의 깜짝 등장은 애플의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됐는데, 이날 애플의 주가는 0.59% 오른 351달러 36센트에 거래됐습니다. 아이패드2 보다 오히려 잡스가 발표회장에 등장한 것이 더 큰 주목을 받았다고 전한 외신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복귀는 우리나라 유명 경영인들의 복귀와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온갖 문제를 다 덮어둔 채 휠체어를 타고 세상에 복귀하는 대기업의 유명 총수들도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주가 반등의 이면에는, 적어도 죄를 덮어두고 사회로 돌아온 비난을 누그러뜨리거나, 사면해준 정부의 뜻을 십분 감안해 투자나 고용을 늘릴 거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실제로 휠체어 복귀 때마다 매번 어느 정도의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잡스의 귀환은 이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가 애플의 경영 전략이나 기획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가 그의 귀환과 함께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9년 종합경제지 포춘으로 부터 ‘과거 10년 간 최고의 CEO’로 선정됐습니다. 단순히 회사의 1인자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직접 의견을 개진하고 함께 고민해 오늘의 애플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스티브 잡스의 위기돌파력(멘토르출판사)’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다케우치 가즈마사라는 이 책의 저자는 애플에서 일한 바 있고,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세 권의 책을 썼던 경험을 갖고 있어서인지 스티브 잡스의 경영 전략이나 판단, 실행과 관련된 특징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움직이는’이라는 전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가 스티브 잡스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가 경쟁사나 선발회사를 따라 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려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로 세계를 바꾼다”, “MP3 플레이어 시장에는 리더가 없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성공 레시피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들자”, “우주에 충격을 주자”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2007년 아이폰을 첫 발표할 때 “컴퓨터 제조사가 왜 휴대전화 시장에 진입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휴대전화를 다시 발명할 생각이다”는 도전적인 대답도 했다는군요.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잡스를 ‘이단적인 비저널리스트(visionalist, 미래구상자)’리고 표현한 대목입니다. 저자는 “일반적인 비저널리스트는 비전을 내세우고, 그 뒤로는 모르는 척한다. 자신의 예측대로 흘러가면 자신이 말한 대로 됐다고 자랑하고, 실패하면 현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며 아랫사람이나 조직 탓으로 돌린다”면서, “그러나 잡스는 다르다. 비전을 내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장에서 지휘를 한다. 설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세부 지시사항도 전달한다. 비전을 실행하는데 열과 성을 다한 이단적인 비저널리스트다”고 평가했습니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경쟁자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라”가 아니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들자”고 하거나, “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는 멋진 제품을 만들어내자”고 말함으로써 젊은 직원들의 마음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애플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잡스는 아이패드2와 함께 복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한동안 이 제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를 이곳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11년은 아이패드 2의 해가 될 겁니다.”

경영자이지만, 회사의 중요한 전략 수행에 한사람의 스텝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새로운 아이패드가 또 다시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테크놀로지 비즈니스 리서치의 애널리스트는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매우 중요한 점이다”면서, “잡스의 말 이상으로, 그의 존재 자체가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CEO들을 이야기할 때도 회자되는 전설(?)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전자제품을 출시한 뒤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자 기술진들이 제대로 해결을 못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CEO가 제품을 완전히 분해해서 문제를 찾았다. 그래서 그 방법대로 했더니 결함이 해결되고, 히트상품이 됐다... 하는 류의 얘기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전설에 믿음이 가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1년 반이나 공을 들여 펩시에서 영입한 존 스컬리(당시 펩시의 차기 CEO로 꼽히던 엘리트)에 의해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패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차원이 다른 컴퓨터를 만들겠다며 설립한 넥스트사는 기술력과 제품 완성도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너무 고가인 탓에 판매부진을 겪다 부도직전까지 가기도 했죠. 아이팟은 ‘비싸기만 한 MP3 플레이어’라는 혹평을 받았고, 아이폰도 출시 초기에는 거대 통신사의 장벽에 부딪혀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위기에 처했던 COE’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위기를 이겨내고,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는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아이폰·아이패드라는 제품의 완성도나, 디자인, 애플 로고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수많은 위기를 겪었으면서도 늘 새로운 혁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데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하기’, ‘좀 더 낫게’ 보다는 ‘완전히 다르게’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실제로 건강에 큰 문제가 있는 가운데서도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 자사의 최신 제품을 들고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자사의 제품이 아닌) 휠체어가 복귀의 아이콘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 CEO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휠체어라도 타고 나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bi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