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지방 선거가 끝난 지도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한편으로는 통쾌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찌 되었든 투표를 참여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던 선거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선거가 끝난 지방자치단체들이 IT 쪽에서 어떤 변화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여서 나름의 예상을 해볼까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선거를 끝낸 지자체가 가운데 상당수가 본격 검토에 들어가지 않겠나 하는 아이템은 바로 FMCFixed Mobile Convergence)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FMC를 단순화시키면 ‘PSTN 유선전화를 인터넷전화(VoIP)로 바꾸어 이것을 휴대전화에 결합시키는 서비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무실에 FMC를 도입하면 책상 위 전화기를 없앨 수 있고, 통신비가 절감되며, 자리에 앉아 있지 않더라도 언제나 자기 자리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업무 능률이나, 고객·파트너의 만족도가 높아지겠죠. 또, 단순히 유·무선 전화 통합만이 아니라, UC나 그룹웨어 같은 것을 결합할 수 있어 업무의 모바일화를 꾀할 수 있게 됩니다. ‘모바일 엔터프라이즈’가 구현되는 것이죠.
국내에서 FMC는 아직 극히 일부 기업들만이 도입한 상태이지만, 이미 큰 관심을 받아온 지 오래되었고, 지난해 연말 이후부터는 실제로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가운데서도 기상청이 연초에 서비스를 시작해 크게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기상청의 FMC 도입은 많은 중앙 부처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 사업을 담당한 통신사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기상청에 제안한 사업계획안을 어지간한 중앙 부처는 다 요청해서 받아갔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처럼 공공기관들의 관심이 높은 이유는 이 서비스가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효과 외에, 공공기관의 이미지 개선에도 한몫을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흔히 ‘공무원’ 하면 ‘칼퇴근’ 같은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데, 언제 어디서나 자리로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일하는 공공기관’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크게 도움이 되겠지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기상청 보다 더 대규모로 FMC를 준비하고 있던 모 중앙 부처는 기상청의 FMC 시스템 구축 소식이 일착으로 보도되자, 너무나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 ‘일하는 공공기관’의 척도가 될 수 있는 ‘대견한’ 작업을, 국내 최초로 시도한 공공기관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놓쳤기 때문일까요^^
이처럼 기업이나 공공기관 할 것 없이 모두가 큰 관심을 보이는 FMC가 이제는 지방자치단체로도 전파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적지 않은 지자체 단체장 후보들이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무선인터넷 인프라(WiFi) 구축’을 공략으로 내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검토하는 내용들을 보면 공무원들의 업무용(FMC)으로 WiFi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시민들이 무료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개방도 한다는 계획입니다.
사실 지자체들 입장에서 WiFi 구축은 돈은 얼마 안 들면서도,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복지 측면에까지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지닌 사업입니다. 그러니 이걸 시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상당수의 지자체들이 IT에 돈 쓰는 데 너무 인색한 탓에 (업무에 제대로 도입했을 때 누릴 수 있는) IT의 혜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민심을 얻기 위해서라면 해마다 보도블럭을 새로 갈아엎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 약간의 투자로 주민들에게 선심을 쓸 수 있는 IT 투자가 앞으로는 붐을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면, 다섯시만 넘으면 당연히 공무원이 업무에서 손을 놓던 관행도, 목에 깁스를 했다는 비아냥을 듣는 전화·상담 응대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습니다. ‘과연 지자체들이 마음놓고 WiFi를 설치해서 서비스를 하도록 정부가 내버려 두겠는가?’ 하는 것이죠. 여기저기서 한번 해보겠다는데 제가 괜히 초를 치는 것은 아니고, 제가 걱정을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4년 전 지방 선거에서 충청도의 한 시장 후보가 “당선되면 시 전역에 광범위한 WiFi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청 등 지역 행정기관 주변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 번화가, 공원 등에 WiFi를 구축해 시민들이 인터넷도 마음 놓고 쓰고, 무선 인터넷전화 단말로 인터넷전화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죠. 서민들 입장에서는 통신비도 줄일 수 있고, 건물 밖에서 인터넷 접속이 자유로워지니 누구나 환영할만한 정책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공약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정보통신부가 정해놓은 규정에 어긋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자체가 스스로 구축한 이른바 자가망에서 공중 서비스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자체가 자신들의 네트워크에서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서비스를 하면 통신사의 서비스 매출이 그만큼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사실, 지자체가 자가망을 갖는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서울시가 정부 방침에 반발해 자가망을 구축했고, 뒤이어 부산시도 자가망 구축에 동참했습니다. 사실 이 정도 일을 가지고 정통부가 서울·부산 같은 지자체를 어찌할 수 없으니, 이렇게 구축한 망에서 공중 서비스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4년 전과는 분명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KT는 이미 몇 달 전부터 SHOW 광고의 초점을 WiFi에 맞추고 있고, 최근 SKT와 LGT도 여기에 동참했는데, 4년 전에는 모두들 WiFi라고 하면 펄쩍 뛰곤 하던 당사자들입니다. 서비스 품질을 보장할 수 없고, 혼신·해킹의 위협이 적지 않니 어쩌니 하면서 말이죠.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초지일관, 뚝심 있게 그래왔던 것처럼 “통신사는 되고, 나머지는 다 안돼”라고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자체 업무에 쓰는 것만 허용이 되겠지요.
서울이나 부산이 정부 방침을 무시하고 자가망을 구축한 것은 통신사들의 망 임대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자가망 구축에서 400억원이 조금 넘게 들었는데 4년 만에 본전을 뽑았고, 부산시는 3년 반 만에 본전을 뽑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앞서 예로 든 충청도의 그 도시는 필요한 WiFi를 까는 데 드는 비용이 50억원 정도였다고 들었습니다. 50억원을 투자해 시민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멋진 일입니다. 강변 공원에 가족 나들이를 갔다가 자녀들이 강변에 핀 들꽃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으면 금방 애기들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자체 혹은 정부 차원에서 WiFi를 구축해 시민들에게 서비스하는 작업이 매우 활발합니다. 복지차원에서 말입니다. 현 정부의 핵심공약 가운데서도 가계 통신 30% 경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미 통신사들이 WiFi를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자사 가입자에 한해서이지만, WiFi가 수익모델은 아닙니다. WiFi에 접속해 유료 콘텐츠를 구입하는 것이 수익모델입니다. 고객들도 WiFi가 무료라서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입한 고객에게 통신사가 무료로 WiFi를 제공하는 것뿐이죠. 네트워크 업계에서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빨랫줄 장사(단순 회선 공급)'로 돈 버는 시대가 이미 지났으니 지자체의 WiFi 제공을 막을 이유도 별로 없는 것입ㄴ다
이런 상황인데도 여전히 4년 전과 같은 논리로 지자체의 무선 네트워크 서비스가 좌절된다면, 초고속 인터넷 강국임을 그토록 내세우던 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www.wifiworld.co.kr 웹을 뒤지다 찾은 무료 WiFi 검색 사이트입니다. parisien님의 블로그에서 알게 됐습니다. 이미 WiFi는 해방구가 됐네요.)
<사람중심 김재철>mykoreaone@bi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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