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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통신/WiFi

WiFi의 마지막 미개척지

【사람중심】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신 산업에서 WiFi는 금기에 가까운 주제였습니다. 통신사들이 스스로 WiFi를 제공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개인적으로 유무선 공유기를 설치해 두 대 이상의 컴퓨터를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하려는 것도 막으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WiFi는 통신사업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WiFi = 경쟁력’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이끼’라는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인기 영화답게 약 스무 편에 가까운 광고가 붙어 있었는데, 그 중 WiFi와 관련된 광고만 다섯 편이나 되더군요. WiFi를 무료로 제공하는지,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WiFi가 제공되는지, WiFi 접속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사실 해외에서는 우리 보다 한발 앞서 WiFi가 통신사업자의 중요한 인프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와 비교해 이동통신에서의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훨씬 일찍, 훨씬 저렴한 요금으로 서비스되다 보니 이동통신망의 부하를 줄여주는 ‘모바일 백홀’의 개념으로 WiFi가 각광을 받은 것입니다.

또, ‘공유 무선랜’으로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FON’은 해외에서 통신사업자의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무료로 제공해야 될 서비스라면, 굳이 중복투자할 필요 없이 공유 무선랜 커뮤니티와 손을 잡겠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이폰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무선 인터넷 트래픽이 많지 않아 WiFi가 절실하지 않았습니다. 통신 요금을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 감히 WiFi를...” 하는 게 통신시장의 분위기였죠. FON도 우리나라에서는 고배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TV 광고를 보면 국내 통신사들은 원래부터 ‘WiFi 전문 통신사’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WiFi에 얼마나 열정을 쏟고 있는지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름 휴가를 갔던 동해안 해수욕장에도 WiFi 로고가 걸려 있었습니다.)

은행도 더 이상 성역은 아닙니다. 과거 금융권 가운데서 보험 분야는 WiFi 도입이 비교적 빠른 편이었습니다. 보험설계사들이 일찍부터 노트북을 사용하던 특성상 WiFi 적용이 빨랐습니다. 증권사 가운데서는 삼성증권이 국내 최초로 FMC(Fixed Mobile Convergence)를 시작하면서 WiFi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업무용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올해 들어 국내 주요 은행들이 WiFi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WiFi를 이용해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은 이미 올해 상반기 전 영업점에 WiFi를 설치했고, 이달 들어 서비스를 시작한 신한은행은 8월 말이면 전 영업점에서 무료 WiFi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또,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8월 말~9월 초에 무료 WiFi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통신과 은행은 WiFi에 가장 반감을 보이던 업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업종에서도 이제는 WiFi가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통신사들은 LG텔레콤이 전사 무선랜을 구축한 것을 시작으로, SK텔레콤과 KT도 업무용으로도 무선랜을 구축해서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WiFi에게 이제 남은 성역은 어디일까요? 바로 공공입니다. WiFi의 마지막 미개척지인 공공은 여전히 진입이 쉽지 않습니다. 보안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걱정들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이 WiFi를 쓰면 안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실제로 편의를 위해 회의실 등 일부 공간에 WiFi 공유기를 설치해놓은 공공기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네트워크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FMC를 비롯한 모바일워크 환경을 마련하고자 WiFi를 전면 도입하려면 문제가 됩니다.

공공기관들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보안적합성 심사라는 것을 받게 되는데, WiFi는 보안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심사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안에 취약한 기술로 인식되어 있기에 공공기관들은 WiFi를 구축하면 심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올해 초 기상청이 국내 공공기관 최초로 WiFi를 구축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FMC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보안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업무에 접속하고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도 받을 수 있는, 이른 바 ‘일하는 공공기관’이 되겠다는 취지여서 심사를 통과하기가 비교적 수월했다는 얘기들을 하더군요.

FMC 구축사업을 추진하는 통신사업자나 FMC 도입을 검토하는 공공기관 모두 기상청의 사례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물꼬는 텄지만, 여전히 공공기관의 전면적인 무선랜 도입은 쉽지 않습니다. 행정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들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공기관은 업무용으로 도입한 WiFi 대역폭의 여유분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서비스하는 데도 제약이 따릅니다. 업무용으로 구축한 네트워크를 공중망으로 제공하는 것은 통신사업자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간주해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지자체들이 의욕을 갖고 있지만,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매출 때문에 혹은 보안이 걱정돼 WiFi를 멀리 하던 통신사와 은행들도 모두 무료로 WiFi를 제공하거나, 업무에 적극 도입하는 상황입니다.

공공기관이 WiFi를 도입하고, 무료로 서비스하는 것을 무조건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보안을 튼튼히 할 수 있는 대책, 통신사업자의 서비스와 상충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적극 마련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공공기관이 관청 주변이나 시유지인 공원 등지에서 WiFi를 무료 제공하면 통신사도 그만큼 부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WiFi 무료 제공을 얘기하다 보니 다시 FON이 생각납니다. 2007년에 국내에 진출해 통신사 및 케이블TV 사업자와 제휴 논의도 진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하기도 했었는데 결국 외국과 같은 협력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공유하는 무선 네트워크’라는 컨셉에 매료돼 정말 잘 되기를 응원했었는데, 혹시 현재와 같은 분위기였다면 FON이 한국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당시 FON의 한국 대표가 지금 네오위즈인터넷의 허진호 대표입니다. 꽤 의욕을 갖고 사업모델을 만들고자 뛰어다니셨던 걸로 아는데... 언제 한번 만나서 당시에 어떤 논의들이 오갔는지 들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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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 김재철>mykoreaone@bitnews.co.kr